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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속 통일이야기

은평의 독립운동

김금복 (1899 ~ 1955)

김금복 선생님은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김금복 선생님은 1919년 4월 2일 밤 충남 아산군 학성면 학성산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며 주민들을 모아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혔고
1919년 6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 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다.

설철스님 (1914 ~ 1981)

설철 선생님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34년 경남 창원군 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항일독립 사상'을 고취시켰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학 생들과 함께 민족주의사상'을 연구하면서 항일독립 의식을 키워나갔고.
통영제일공립심상소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다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38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원 치안유지법, 출판 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뤘으며 정부에서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심용철 (1914 ~ 2001)

심용철은 함북 길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남 화한인청년연맹 등 무정부주의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별동조직으로 상해에 흑색공포단을 결성하여 항일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흑색공포단은 일본영사관의 밀정인 이종홍, 상해 소 신인 거류민회의 고문으로 친일파인 이용로를 사살 응징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동지들이 체포되고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중국 적지 에서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립군 모집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정부는 선생님의 공훈을 기리어 2000 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엄진영 (1899 ~ 1947)

엄진영 선생님은 부산에서 태어나 1919년 3월 13 일, 부산 동래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김귀룡 등과 함께 동래군청 앞 광장에 모인 시위군중에게 인쇄물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이때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년 6월 5일에는 일본경찰의 만행을 보고 이를 구타했다가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유찬옥 (1916 ~ 1946)

유찬옥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나주 농업 보습학교를 다니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 운동 당시 수감된 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농업보습학교 및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시위운동을 하도록 권유, 농업보습 학교 학생 47명과 보통학교 학생 130명이 항일시위를 전개하였고 이 사건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수감당시 독립운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장진홍이 옥중에서 자결하여 순국한 사건을 강력히 항의하다가 징역 8월을 더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근재 (1893 ~ 1953)

이근재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영신 학교로 근무하다 교회 간부들과 1919년 3월 3일의 함흥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선생님은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제작 등사하기로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투옥자의 생활비 변호인 선정 등을 담당하였다. 계획과 달리 3월 2일 주민들의 자발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이에 놀란 일본 경찰이 3월 3일 새벽에 예비 검속을 실시하여 많은 주동자들이 체포되었다. 선생님은 이때 체포되어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명봉 (1864 ~ 미상)

이명봉은 1919년 3월 3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시위를 주도 하였고
이날 일경에 체포되어 4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님은 정평 제일예수교내 기독청년회에서 설립한 성경연구과에서 수학하는 등의 종교 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종렬 (1924 ~ 현재)

이종렬은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1945년 1월, 중국 호북성, 신점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 유격부대에서 유전과 적 정보수집 활동 등을 하였다.
그 후 광복군 제 1지대 제3대에 편입되어 전방 공작원으로서 대적 정보활동 및 한·중 합동작전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조상연 (1914 ~ 1939)

조상현은 평북 정주 출생으로 어린 시절 만주 하얼빈으로 망명, 중국 국민당 정부가 조직한 비밀결사 C.C단에 가입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약하였다.
중국 천진에 잠입하여 안경근과 더불어 일본군의 군사정보 등을 수집, 동지들에게 타전하는 등 한국국민당의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천진의 일본영사관 경찰에 의해 잡혀 국내로 압송, 1939년 9월 18일 치안유지법 위반 및 간첩죄-군기보호법 위반으로 형을 받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승달 (1888 ~ 1967)

최승달은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1921년 4월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일본의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일본주재 미국대사관을 폭파함으로써 일본과 미국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웠었고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21년 12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님은 1925년 11월과 1942년 9월에도 독립운동의 혐의로 예비검속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영기 (1918 ~ 미상)

홍영기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1940년 동아연맹 한국학생 좌담회에서 유학생들을 만나 우리 민족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본제국 주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협의하고
독립운동을 측 진할 비밀결사 '우리들'을 조직하였다. 선생님은 독립 달성을 위한 1단계로서 전남 담양의 회원 박석우의 집에서 회원들과 함께 연구 상황을 상호 보고하는 등 독립정신 앙양에 노력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후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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